발기인 K의 혼잣말 VOL2 "과거 푸마에 있던, 자랑스런 소수자와 슈퍼 스타 '
반역의 냄새가났다니까. 자랑스런 소수에 생각했기 때문. 최고의 슈퍼 스타 있었기에.
골드 데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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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4
질루에서 마지막 패스를 그리즈맨이 결정했다. 옛날이라면 절대로 광희하고 있었다.
메시는 제외했지만 아구에로는 결정했다. 그렇다면 용서한다. 옛날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푸마 매니아였다. 얼마나 매니아였는지,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 유일한 푸마 컴플리트 팀
(즉 유니폼도 스파이크도 전원 푸마라고 하는 것)라고 하는 것만으로,
오토매틱에 오스트리아 대표의 팬이 되어 버린 정도의 매니아였다.
크랭클. 프로하스카. 콘시리아. 좋아했어.
이 대회, 오스트리아는 이웃나라·서독에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지만,
그 때, 결승점이 될 자살 점을 결정한 것이 보르시아 멘헨 그라드 바흐의
정신적 지주로 서독 대표의 주장이었던 베르티 폭츠였다.
아디다스라고 하면 바이에른. 푸마라고 하면 글래드바흐.
그래서 글래드바흐 팬으로서는 상당한 통한사였다.
다만, 대표에서의 폭스는 아디다스의 스파이크를 착용하고 있었다(유니폼은 이 대회만 에리마였지만). 그러니까 자살점 왠지 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선수가 푸마였던 아르헨티나 대표는,
최고로 좋아하는 팀이 되었다(유니폼은 아디다스였지만).
남미라고 하면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축구 왠지 희미한 것만‥‥라는 이미지를,
켐페스나 루케, 벨토니에 타란티니, 파사레라에 피조르라고 하는 선수들과,
경기장을 덮은 아름다운 색종이가 날려 버린 것이다.
왜 그 무렵 저는 그렇게도 푸마를 좋아했을까.
반역의 냄새가 있었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마이너리티로 보였으니까. 최고의 슈퍼스타가 있었으니까.
마츠모토 레이지씨의 「전장 만화 시리즈」를 계기로,
부모가 걱정할 정도의 제2차 대전 밀리터리 오타쿠가 되었던 나에게는,
아디다스는 B-29로 푸마는 Ju-87이었다.
가타야 안전한 고고도에서 대량의 폭탄을 뿌리는 미국의 수평 폭격기로,
가타야 「제리코의 랩퍼」라고 두려워한 위협용 사이렌을 꽉 끼워,
핀 포인트에서 일격을 노리는 독일의 급강하 폭격기였다.
나는 단연 슈투카(Ju-87의 애칭)를 좋아했다.
초·공의 요새라고도 불린 B-29는, 대전 후기의 미국 공군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대흑기둥이기도 했다.
한편 슈투카는, 구식화한 것도 있어 대전 종반은 연합군 전투기의 오리가 되어 버렸다.
거기가 좋았다. 그 비극성과 파멸적인 말로가 그 무렵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아디다스를 신고 있는 선수는 산 정도였다.
보다는, 그 무렵의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팀의 대부분은,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아디다스의 스파이크를 신고 싸우고 있었다.
B-29의 융단 폭격이 거기에 더빙했다.
물량으로 압해 오는 아디다스에 비해, 푸마는 다세하게 무세도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푸마를 선택하는 클라이프가 있고, 네처가 있고,
당시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있었다.
그리즈맨. 좋은 선수. 레알 소시에다의 무렵부터 좋아했다. 지루의 무골함도 싫지 않다.
아구에로. 꽤 좋아. 메시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아르헨티나 옛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그들은 반역자일까.
마이너리티일까.
그리고 팀 최고의 슈퍼스타일까.
유세비오도, 페레도, 클라이프도, 켐페스도, 마라도나도, 마테우스도,
소속된 팀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주위의 10명이 아디다스를 신고 있어도, 혼자만, 절대적인 에이스만은 푸마.
융단 폭격을 할 수 없는 분, 핀 포인트로 초대물만을 노린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푸마였다.
육상 경기에서 우사인 볼트에 목표를 정한 것은 그야말로 푸마 같은 방법이었다.
원래 옛 푸마의 그것도 축구계에서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축구계에 우사인 볼트적인 푸마 유저(약어 푸머)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즈맨은 다르고 아구에로도 아니다. 마르코 로이스도 부족하다.
21세기에 들어서 독일의 헤르조겐 나우라흐라는 작은 도시에
푸마의 본사와 아울렛을 방문할 때마다, 그 활황만으로는 놀라워져 왔다.
어쩌면 빈사였던 90년대에 비하면 푸마의 경영은 계속 상향하고 있다.
일본에 한하지 않고 전세계에서 푸마를 신은 여성을 보는 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푸마는 어느새 세련된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뭐. 내가 좋아했던 푸마에게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디다스 유니폼을 착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라인을 한 개 잘라서 월드컵을 플레이한 74년의 크라이프.
푸마의 스파이크가 아니면 싫다고, 일부러 3본선을 꿰매어 플레이한 서독 대표에서의 넷처.
지금의 푸마에, 이야기는 있을까.
불필요할 때까지의 고집을 가진 푸머가 얼마나 있을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 하면, 나는 지금도 푸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계약 선수를 선택하는 방법을 보면 예를 들어 아스날로 이적했습니다.
그라니트 샤카를 잡은 언더아머가 옛날의 푸마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파라 메히코를 익사하고 있다는 하리도 선수에게 토츠카 케이가 취재를 해왔다.
유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맹렬하게 기쁘게 되어 버렸다. 동류가 있었다는 기쁨이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 소수파로, 가까운 장래, 멸종해 버리는 종족인 것은,이라고도 생각했다.
과연, 푸마의 미래는 어떻게.
어느 쪽이 이 의문을 직접 부딪히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계속)
사진 / 시미즈 카즈요시
메시는 제외했지만 아구에로는 결정했다. 그렇다면 용서한다. 옛날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푸마 매니아였다. 얼마나 매니아였는지,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 유일한 푸마 컴플리트 팀
(즉 유니폼도 스파이크도 전원 푸마라고 하는 것)라고 하는 것만으로,
오토매틱에 오스트리아 대표의 팬이 되어 버린 정도의 매니아였다.
크랭클. 프로하스카. 콘시리아. 좋아했어.
이 대회, 오스트리아는 이웃나라·서독에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지만,
그 때, 결승점이 될 자살 점을 결정한 것이 보르시아 멘헨 그라드 바흐의
정신적 지주로 서독 대표의 주장이었던 베르티 폭츠였다.
아디다스라고 하면 바이에른. 푸마라고 하면 글래드바흐.
그래서 글래드바흐 팬으로서는 상당한 통한사였다.
다만, 대표에서의 폭스는 아디다스의 스파이크를 착용하고 있었다(유니폼은 이 대회만 에리마였지만). 그러니까 자살점 왠지 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선수가 푸마였던 아르헨티나 대표는,
최고로 좋아하는 팀이 되었다(유니폼은 아디다스였지만).
남미라고 하면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축구 왠지 희미한 것만‥‥라는 이미지를,
켐페스나 루케, 벨토니에 타란티니, 파사레라에 피조르라고 하는 선수들과,
경기장을 덮은 아름다운 색종이가 날려 버린 것이다.
왜 그 무렵 저는 그렇게도 푸마를 좋아했을까.
반역의 냄새가 있었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마이너리티로 보였으니까. 최고의 슈퍼스타가 있었으니까.
마츠모토 레이지씨의 「전장 만화 시리즈」를 계기로,
부모가 걱정할 정도의 제2차 대전 밀리터리 오타쿠가 되었던 나에게는,
아디다스는 B-29로 푸마는 Ju-87이었다.
가타야 안전한 고고도에서 대량의 폭탄을 뿌리는 미국의 수평 폭격기로,
가타야 「제리코의 랩퍼」라고 두려워한 위협용 사이렌을 꽉 끼워,
핀 포인트에서 일격을 노리는 독일의 급강하 폭격기였다.
나는 단연 슈투카(Ju-87의 애칭)를 좋아했다.
초·공의 요새라고도 불린 B-29는, 대전 후기의 미국 공군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대흑기둥이기도 했다.
한편 슈투카는, 구식화한 것도 있어 대전 종반은 연합군 전투기의 오리가 되어 버렸다.
거기가 좋았다. 그 비극성과 파멸적인 말로가 그 무렵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아디다스를 신고 있는 선수는 산 정도였다.
보다는, 그 무렵의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팀의 대부분은,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아디다스의 스파이크를 신고 싸우고 있었다.
B-29의 융단 폭격이 거기에 더빙했다.
물량으로 압해 오는 아디다스에 비해, 푸마는 다세하게 무세도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푸마를 선택하는 클라이프가 있고, 네처가 있고,
당시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있었다.
그리즈맨. 좋은 선수. 레알 소시에다의 무렵부터 좋아했다. 지루의 무골함도 싫지 않다.
아구에로. 꽤 좋아. 메시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아르헨티나 옛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그들은 반역자일까.
마이너리티일까.
그리고 팀 최고의 슈퍼스타일까.
유세비오도, 페레도, 클라이프도, 켐페스도, 마라도나도, 마테우스도,
소속된 팀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주위의 10명이 아디다스를 신고 있어도, 혼자만, 절대적인 에이스만은 푸마.
융단 폭격을 할 수 없는 분, 핀 포인트로 초대물만을 노린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푸마였다.
육상 경기에서 우사인 볼트에 목표를 정한 것은 그야말로 푸마 같은 방법이었다.
원래 옛 푸마의 그것도 축구계에서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축구계에 우사인 볼트적인 푸마 유저(약어 푸머)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즈맨은 다르고 아구에로도 아니다. 마르코 로이스도 부족하다.
21세기에 들어서 독일의 헤르조겐 나우라흐라는 작은 도시에
푸마의 본사와 아울렛을 방문할 때마다, 그 활황만으로는 놀라워져 왔다.
어쩌면 빈사였던 90년대에 비하면 푸마의 경영은 계속 상향하고 있다.
일본에 한하지 않고 전세계에서 푸마를 신은 여성을 보는 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푸마는 어느새 세련된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뭐. 내가 좋아했던 푸마에게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디다스 유니폼을 착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라인을 한 개 잘라서 월드컵을 플레이한 74년의 크라이프.
푸마의 스파이크가 아니면 싫다고, 일부러 3본선을 꿰매어 플레이한 서독 대표에서의 넷처.
지금의 푸마에, 이야기는 있을까.
불필요할 때까지의 고집을 가진 푸머가 얼마나 있을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 하면, 나는 지금도 푸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계약 선수를 선택하는 방법을 보면 예를 들어 아스날로 이적했습니다.
그라니트 샤카를 잡은 언더아머가 옛날의 푸마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파라 메히코를 익사하고 있다는 하리도 선수에게 토츠카 케이가 취재를 해왔다.
유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맹렬하게 기쁘게 되어 버렸다. 동류가 있었다는 기쁨이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 소수파로, 가까운 장래, 멸종해 버리는 종족인 것은,이라고도 생각했다.
과연, 푸마의 미래는 어떻게.
어느 쪽이 이 의문을 직접 부딪히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계속)
사진 / 시미즈 카즈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