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진 킹 테니스의 테두리를 넘어 사회를 바꾼 전설의 여성 테니스 플레이어의 궤적
테니스계의 레전드, 빌리 진 킹. 압도적인 실적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남녀 평등을 호소하고 여자 테니스의 지위 향상에 노력한 개혁자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역사를 바꾼 싸움과 그녀의 공적을 되돌아 본다. ※일러스트/이것 소나무 에무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은 1943년 11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여자 테니스 선수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여자 테니스계에서 활약해 압도적인 실적을 남겼다. 또한 스포츠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호소하고 남녀 평등의 실현을 향해 계속 행동한 개혁자이기도 했다. 1965년 변호사이자 부동산업자이기도 한 랠리 킹과 결혼해 '빌리 진 킹'이 되어 일본에서는 '킹 부인'이라고도 불렸다.
전호 선수권에서의 2관 달성으로 세계에의 실력을 증명
빌리 진 킹 부인은 1960년 여자 테니스계에 등장했고, 다음 1961년에는 윔블던 여자 복식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을 완수했다. 당시 그녀는 17세로, 쌍을 이룬 카렌 한체는 18세. 지금도 기록에 남는 쾌거였다. 그 후도 빛나는 실적을 쌓아 1966년에는 윔블던 여자 싱글스에서 첫 우승을 완수해 1968년까지 3연패를 달성했다. 1967년에는 전미 선수권과 윔블던 양 대회에서 '해트트릭'으로 불리는 싱글스·더블스·혼합 더블스의 3부문 제패라는 위업을 이루고, 1968년에는 전호 선수권에서 싱글스와 혼합 더블스의 2관을 획득해, 그 실력을 세계에 증명한다.
이 해 테니스계는 큰 전환기를 맞이한다. 프로 선수가 4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오픈화'가 실현된 것이다. 이 개혁에 따라 빌리진도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향해 새로운 무대에 나섰다. 그리고, 1972년에는 전불상 오픈을 제패해, 4대 대회 모두에서 우승을 이루는 「캐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 그녀의 통산 우승 횟수는 129회, 그랜드 슬램 통산 우승 횟수는 39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자랑한다. 물론 여자 테니스의 세계 랭킹 1위에도 빛나고, 그 압도적인 전적은 지금도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킹 부인의 혁명적인 활동이 스포츠계를 바꾼 순간
프로로 전향해 선수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상금 제도에서는, 남녀 사이에 큰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맞서기 위해, 1970년, 킹 부인을 비롯한 여자 테니스 선수 9명이 단결해, 「오리지널 9」를 결성. 그녀들은 남녀간의 상금 격차에 항의해, 당시 설립된 방금의 여자 프로테니스 투어 「버지니아 슬림 투어」에, 1달러의 계약으로 참가. 이 용기 있는 행동은 여자 테니스의 미래를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된다.
'오리지널 9'의 활동이 열매를 맺고, 1973년에는 킹 부인의 주도로 'WTA(여자 테니스 협회)'가 설립되어 여자 프로테니스 선수의 지위는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또, 상금 격차의 시정에도 연결되어, 같은 해, 전미 오픈은 4대 대회에서 처음으로 남녀 동액의 상금을 도입. 이 개혁은 여성 선수에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게다가 1974년에는 테니스계를 넘어 여성 스포츠 전체의 발전을 목표로, 「WSF(여자 스포츠 재단)」를 설립. 여자 선수를 지원하고 스포츠계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촉진하는 활동을 실시했다. 킹 부인의 활동은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어 여성 선수의 미래를 개척하는 초석이 되었다.
남녀 평등을 둘러싼 싸움이 열린 여자 스포츠의 새로운 시대
킹 부인의 경력 중에서도 특히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배틀 오브 더 섹시스(성별을 넘은 싸움)'이다. 이 경기는 단순한 테니스 경기에 그치지 않고 남녀 평등을 둘러싼 역사적인 경기가 되었다.
당시 여자 테니스계는 남자에 비해 경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1930~1940년대 남자 테니스계에서 활약한 전 세계 랭킹 1위인 보비 릭스가 "여자의 테니스는 남자보다 뒤떨어진다. 그래서 55세의 자신도 여자의 톱 플레이어를 이긴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공언하고, 여자 테니스계를 도발하고 있었다. 1973년 5월, 리그스는 당시의 여자 세계 랭킹 1위 마가렛 코트와 대전하지만, 그녀는 6-2, 6-1로 완패해 버린다.
이 사건을 받아 여자 테니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킹 부인은 릭스의 도전을 받기로 결의. 1973년 9월 20일, 텍사스 주 휴스턴의 아스트로돔에서 역사적인 경기가 열렸다. 관객수는 3만명 이상, 미국 국내에서 5000만명, 미국 국외에서는 9000만명의 사람들이 TV에서 관전해, 사상 가장 시청된 스포츠 이벤트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경기 결과는 킹 부인이 6-4, 6-3, 6-3의 스트레이트 승리. 이 승리는 단순한 스포츠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여성 선수의 가치를 증명해, 사회 전체에 남녀 평등의 의식을 전파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이 '배틀 오브 더 섹시스'의 승리는 이후 여성 스포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경기를 계기로 여성 선수에 대한 존경이 높아지고 여성이 스포츠계나 사회에서 보다 공정한 취급을 요구하는 기운이 높아진 것이다.

킹 부인은 코트상에서 빛나는 실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코트 밖에서도 여자 테니스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여자 테니스가 있을 것이다. 그 공적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크다. 아직도 알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 라켓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킹 부인이 사용하고 있던 역대의 라켓도 추적해 보고 싶은 것이다.
※기사내의 정보는 전달 시점의 정보입니다.